2019년 8월 30일

문영훈 논스 공동창업자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논스의 탄생

지금 눈 앞에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났어. 단 한 가지 꿈을 이뤄준대. 어떤 소원을 말할 것 같아?


“음… 없는 것 같아.”

 

램프의 요정 지니는 ‘꿈을 이루어 주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꿈을 빼앗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꿈의 다른 이름은 ‘자아 실현’이다. 즉, ‘나’의 존재 가치, 생의 의미를 증명해 보이는 행위다. 그 행위가 누군가에 의해 대신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아의 실현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내가 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목표’를 품고 사는 것은 아니다. 단지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100개의 소원도 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루고 싶은 꿈은 수없이 많지만, 지니에게 맡길 소원은 한 가지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문영훈의 이야기다.


한국 사회에 학습된 무기력이 만연하다고 했다.


“오래된 생각이야. 생각보다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 그런데 대부분 자신을 제한하는 것 같아. 무기력하고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학습된’ 거라고 생각해.

무기력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운다는 말이야?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 교육 시스템이 야기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압축 성장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써왔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도 봐. ‘나’보다 ‘남’에 집중하는데 능하지. 한국은 남을 정확하고 빠르게 흉내내는 능력을 높게 쳐주는 사회잖아? 그보다는 사실 ‘나’에 집중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인간은 누구나 ‘나’에 관심이 많잖아.


“그렇지만 대개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 물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에세이를 써본 사람이 별로 없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움을 느끼거나 고통을 느끼는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해왔는지 등을 골똘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보거든. 지나가는 기억이 있고 생생하게 남는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으면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놓쳐버려. 뭘 좋아하고 뭘 추구해야 하는지 모르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행복한 삶의 구체적 조건을 섬세하게 따져보지 않고 적당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거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어. 수학뿐만 아니라 공부가 대체로 재밌었어. 그래서 민족사관고등학교에 갔고 그곳에서 똑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 그리고 영국의 옥스포드로 대학을 갔는데 그 학교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 수학이 좋아서 수학을 하는 친구들이 더 많더라고. 한국에서도 수학을 잘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개들 중에는 수학을 잘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 좋은 직업을 갖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수학을 좋아하는 애들이 많았어. 그런 경험들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아. 수학이 좋아서 수학을 하는 애보다 돈 벌고 싶어서 수학을 하는 애가 수학을 더 잘 할 수는 없거든. 적당한 선에서 다 끝나.”

두루뭉술한 행복을 적당히 추구하는 삶은 잘못된 거야?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야. 다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논스를 만든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잠재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해서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는 거야. 아까 말했듯이 이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서 주변에서 도와주면 더 잘 찾을 수 있어.”

첫 번째 이유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직시하게 하는 것’, 그럼 논스를 만든 두 번째 이유는 뭐야?


“사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그런데 대부분 그걸 모른 척하지. 왜냐면 그걸로 먹고 살 자신이 없으니까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나서 자신이 적당히 잘 하는 일로 밥 벌어먹고 살 궁리를 하는 거지. 예를 들면 ‘나는 여행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엄청 많아. 근데 대부분 그걸 업으로 삼고 극단적으로 추구할 생각을 안 해. 왜냐면 그걸로 먹고 살기 힘들 거 같으니깐. 근데 그게 정말 불가능할까?”

보통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사실 김범수나 박효신 같은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지만, 열 일곱 살 때쯤 가수가 될만한 재능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거든.


“안 되는 일은 없어. 그것이 좀 극단적인 일이라고 해도 말이야. 난 요즘 내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 근데 그런 걸 해내려면 중요한 준비물이 있지.”

그게 논스를 만든 두 번째 이유겠구나?


“맞아. 바로 용기야”

용기? 드래곤볼 같은 소년 만화 주인공들이 적을 무찌를 때 찾는 그 용기?


“응. 용기가 필요해. 내가 정한 목표를 할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논스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그걸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 사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모아 놓고 보니까 신기한 일이 생겨. 용기가 전염되는 거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들 진지하게 자기 꿈을 이야기하니까 내가 가진 좀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꿈도 뻔뻔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다른 데서 이야기하면 ‘그게 말이 되냐?’는 소릴 들을 수도 있지만, 여긴 그런 사람이 없거든.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은 애초에 못 들어와 논스에.”

사실 나도 논스에 와서 좋았던 게 이거야. 용기라는 표현이 아주 적당한 것 같은데, 살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 할 때 많았거든. 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을 때가 많아서 “나 이런 거 해보고 싶어”, “이런 거 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은데 진지하게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니까. 무관심하거나 안 되는 이유를 10개쯤 이야기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근데 여기는 그런 반응 없고 진지하게 들어주니까 좀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야.


“응. 자기가 진짜 원하는 걸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엄청 어려운 일이야. 열심히 해야되고 꾸준히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에너지가 있어야해. 그 에너지의 핵심이 용기인 거지.”

연결


꿈과 용기는 갖춰졌다고 치자. 그럼 이제 꿈을 이루면 되는 거야?


“나는 요즘 ‘왜 예술가들은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

왜 예술가들이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지?


“예술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그리고 그걸 추구할 용기도 있지. 그런데 문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예술가들이 힘들게 사는 경우가 엄청 많아.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부분’만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창작에만 관심이 있고 그 전 후 단계에는 관심이 없지.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금융’이고 ‘유통’이야. 본인이 몰라도 사실 상관없어. 그런데 금융과 유통을 잘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볼 필요는 있는 거지. 그런데 예술가 커뮤니티와 금융, 마케팅이 연결되는 일이 거의 없어. 서로 이야기를 거의 안 해.”

‘연결’이구나.


“응.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면 솔루션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져. 혼자 특정 분야에 묶여 있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쉽게 바뀔 수도 있어. 이미 논스에 그런 사례가 많이 생겨나고 있고.”

논스는 블록체인 커뮤니티 아니야?


“시작은 블록체인이었지만 블록체인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만 모여서는 안 돼. 이미 그렇지 않기도 하지. 교육에 미쳐 있는 사람, 춤에 미쳐 있는 사람, 베트남에 미쳐 있는 사람,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미쳐 있는 사람 등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야. 앞으로는 더 극단적으로 다양성이 높아질 거야. ‘어, 이런 것들도 연결이 되네?’ 싶은 것까지 연결을 하면서 거대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거지.”

꿈이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서로 전염시키면서 연결되는 곳


“이더리움 재단을 가봐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러면서도 연결되어 있지. 서로 도움을 나누고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일해. ‘프리랜서’의 장점과 ‘직장’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적당히 멈추지 말고 극단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미션을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 논스라는 업은 그 환경을 만들고 도와주는 거야. 자기를 찾을 수 있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껴?


“음… 그렇지는 않아.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담담해. 왜냐하면 놀랍지 않거든. 이 친구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해봤기 때문에 하나도 놀랍거나 하지는 않아. 그럴 줄 알았으니까. 또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해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매일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잖아. 갑작스러운 상황은 아니지. 오히려 가슴이 뛰고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은 ‘상상’을 할 때야. 지금 눈 앞의 현실과 다른 미래의 나, 미래의 논스, 미래의 논스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 더 큰 희열을 느끼지.”

문영훈은 굉장히 모험적이며 낙관적이다. 늘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며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논스를 운영하는 데 적합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너는 포기하고 싶고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없어?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아주 많지. 과거 작은 논스에서 100명 짜리 논스로 이주할 때 정말 고민 많았어. 자신 없더라고. “이거 너무 힘들 것 같아. 못할 것 같아”라고 동료이자 친구인 영세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지. 그랬더니 영세가 자기가 다 책임질 테니 해보자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까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더라. 그때 영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지금과는 좀 다른 상황에 있을 거야.


나에게도 논스가 필요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으면서 용기를 얻고 솔루션을 만드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몹시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혼자서는 못하지.”

이런 일을 너는 왜 하지?


“아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야. 사람들은 보통 돈, 명예, 권력을 원하고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사실 난 지금 별로 부족한 건 없거든. 젊고, 건강하고, 경제적 자유도 있지.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한가?


요즘 싯다르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그는 왕자였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지. 그런데 무상함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 버렸잖아. 왜 그랬을까?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에서는 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생각해. 근원적이고 극단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거지. 그래서 옛날 귀족들이 수학과 철학에 빠져 있었던 게 이해가 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어. 답이 없지. 삶의 이유를 고민하는 사람은 삶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왜 사는가?”는 고민이 깊어질수록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잖아. 솔직히 논스가 아무리 잘 되더라도 사람들이 여기서 존재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데 나는 실용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이기도 하지. 진실이나 진리는 아니지만 쓸모가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어. 뉴턴 역학은 잘 만들어진 거짓말이야. 허구지. 그러나 실용적이기도 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논스도 마찬가지야. 근본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주지는 못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어. 우리가 보통 꿈이나 목표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논스는 그걸 잘 하게 해주는 도구야.


즉,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인 거지.”